[스크랩] “절에서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사람이 전생에 업을 다하고 악도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우며,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부처님 법을 만나기가 어려우며, 부처님 법을 만났을 지라도 신심을 내기가 어렵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늘 부처님 법 만난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도 신행(信行), 즉 믿고 행함에 있어 소홀하지 않았나 제 자신을 돌이켜봅니다.
제가 다니는 절 경기도 구리시 갈매리 보현사는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서울 근교에 이렇게 공기 좋고 전망 좋은 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우리 한국불교 현대화·대중화의 선구자이신 광덕 스님께서 오랫 동안 주석하셨던 뜻깊은 도량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절에 갔다 올게요” 하면 남편은 “잘 갔다 와.” 합니다. 예전엔 꿈도 못 꾸던 일입니다. 그러면 예전엔 어땠냐구요? “절에 갔다 올게요.” 하면 “절에서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절엔 뭐 하러 가.” 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면 나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성질이 올라와도 내색할 수는 없으니까, “예, 절에서 밥도 나오고 떡도 나와요. 거기다가 또 과일도 나오고 나물도 나와요.”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할 말이 없는지 대꾸가 없습니다.
신심이 뭔지도 모르고 남이 절에 가면 따라가고 기도하면 따라하고 그러기를 수년간. 우리 속담에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라는 단어조차 어설프게만 느껴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제가 보현사에 다닌 지도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또 반이나 지났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숱한 일을 겪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그 동안 어렵고 위급한 상황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지요. 삶의 힘겨운 고비 고비마다 관세음보살님의 보살핌을 느낍니다. 아직도 불법이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체험을 통해 오로지 부처님 가피력과 위신력만은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여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희 거사가 부산에서 일할 때였죠. 거사는 15톤 덤프트럭을 운전합니다. 터널 공사를 했어요. 공사장은 어디나 똑같지만 터널 공사는 더욱 어려움이 많은 곳이지요.
어둡기도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두손 모아 합장하고 기도하곤 한답니다.
하루는 꿈 속에서 처음 보는 비구스님 몇 분이 저를 향하고 서서 일제히 목탁을 치시며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저는 의아해 하며 그냥 합장하고 서있었어요. ‘스님들이 왜 나를 보고 기도를 하시나’ 꿈에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꿈에서 깬 다음날에도 저를 보고 기도하시던 스님들의 모습이 영 잊혀지지 않는 겁니다. 그 날 오후에 거사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기절초풍할 내용이었습니다.
“죽었다 살았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 “어떻게, 왜요?” 하니까 캄캄한 터널 안에서 작업 중에 잠시 차에서 내려 땅에 떨어진 돌들을 치우고 있었답니다. 타이어가 펑크 나면 일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페이로더가 후진하면서 어두우니까 남편을 못 보고 엉덩이를 받아버렸답니다.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면서 페이로더가 거사를 넘어가려는 위기에, 바퀴 사이로 공간이 보여 그대로 굴러서 빠져나왔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내가 저 바퀴에 깔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굴렀답니다. 후진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냥 있다가는 오징어가 되겠더라는 겁니다. 페이로더는 상황도 모르고 전진 후진을 반복하면서 자기 일에 열중할 테니까요.
남편이 그렇듯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저는 그저 ‘아, 그랬구나 부처님!’ 하며 안도의 한숨만 쉬었습니다. 타박상 하나 없이 무사하다는 것은 부처님 가피력이 아니고는 그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몇 분 스님들이 나를 향해 목탁을 치시며 기도를 해주신 것이 남편을 살리는 기도였구나’ 하고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불자가 아닌 사람이 들으면 아마도 헛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겪었고 저만 아는 보이지 않는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으니 오로지 “부처님 감사합니다.”만 할 수밖에요.
이제 우리 스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지암 스님께서는 보현사가 한참 어려운 때 오셨습니다. 작년 가을엔 매일매일 낙엽을 쓸어내시기에 “스님, 낙엽을 매일 쓸면 힘드시니까 모았다가 며칠에 한 번씩 쓸어내세요.” 했더니 “보살님은 밥을 매일 안 드시고 모았다가 며칠에 한 번씩 드십니까?” 하셔서 그만 ‘에그머니나!’ 했지요. 스님은 매일 아침 마당을 정성껏쓸듯 일도 차근차근 많이 하셨습니다. 오신 지 2년 조금 넘었지만 이루어 놓으신 업적이 대단하십니다. 제일 큰 일은 화재로 소실된 법당 자리에 석축을 쌓는 큰 공사를 아무 탈 없이 마치신 것입니다. 또 합창단(약 40명)을 만들어 부처님께 음성공양을 올리십니다.
지암 스님의 법호는 보하(菩河)이신데, ‘여러 중생을 큰 물이 흐르듯 제도하라’는 큰 뜻이 담겨 있다고 언젠가 말씀하셨습니다. 스님 법문 중에는 항상 “남을 미워하지 마라. 남을 미워하면 자기 자신이 먼저 미워지게 된다. 시어머니도 부처님처럼 모시고 남편도 부처님처럼 모셔라.” 하시며, “전법을 최상의 수행으로 삼아 불국토를 실현하기 위해 쉼없이 실천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스님의 은사이신 광덕 스님의 전법 원력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강조하시는 효성스런 상좌로서의 모습도 아주 보기 좋은 스님이십니다.
아울러 도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도반이란 부처님 가르침을 함께 배우며 수행하는 가족이라고 할까요. 저는 나름대로 참 좋은 도반을 만났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생겼을 때도 우울할 때도 다스림이라는 약으로 다독여 주니까요. 도반과 함께 하는 그 시간, 그 공간에는 항상 즐거움으로 충만하답니다. 진정한 도반은 허물이 없습니다. 도반에게 항상 배우고 또 반성합니다. 이제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도반이자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불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나이에 속이 텅빈 수수깡 같은 모습이었겠지요. 부처님과 스님, 도반에게 조금씩 채워가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전법에도 힘쓰겠습니다. 제가 아는 만큼 또 배워가면서 어두운 곳의 등불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신 스님들께 감사합니다. 도반들께 감사합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국토 성취하리라. 마하반야바라밀.
글· 이오기
*이 글은 월간 「불광」 창간 30주년 기념 신행수기 공모전 입선작으로서, 이오기 님은 구리시 갈매리 보현사에서 활발한 신행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