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불멸의 이순신

난중일기(임진년 2월)

행성 2006. 11. 17. 14:09

임진년 2 (1592 2)

 

2월 초1 [양력 3 14]<임진>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가랑비가 잠간 뿌리다가 늦게야 개었다. 선창(여수시 연등동 입구)

로 나가 쓸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방천안에 몽어 떼가 밀려 들어 왔기로,  그물을

쳐서 이천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쾌했다. 그 길로 전선 위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우후 이

몽구(이몽구)와 함께 새 봄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2월 초2 [양력 3 15]<계사>

맑다. 동헌에서 공무를 봤다. 쇠사슬을 건너매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돌 여든 여 개를  실어

왔다. 활 열순을 쏘았다.

 

2월 초3 [양력 3 16]<갑오>

맑다. 새벽에 우후가 각 포구의 부정사실을  조사하는 일로 배타고 나갔다. 공무를 마친 

활을 쏘았다. 탐라 사람이 자녀 여섯 식구를 거느리고 도망쳐나와 금오도(여천군 남면)에 머

물다가 방답 경비선에 잡혔다고 심부름꾼을 보냈기로 문초를 하고서 승평(순천)으로 압송하

고 공문을 써 보냈다. 저녁에 대석 네 개를 실어 올렸다.

 

2월 초4 [양력 3 17]<을미>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북쪽 봉우리의 연대(신호대)쌓는 곳에 오르니, 쌓은 곳이

매우 좋아 무너질 염려가 없으매 이봉수(이봉수)의 애썼음을 알겠다. 종일 구경하다가 저녁

에야 내려와 해자 구덩이를 순시했다.

 

2월 초5 [양력 3 18]<병신>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여덟 순을 쏘았다.

 

2월 초6 [양력 3 19]<정유>

종일 바람이 세게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두 번이나 왔다.

 

2월 초7 [양력 3 20]<무술>

맑다가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발포만호가 부임했다는 공문이 왔다.

 

2월 초8 [양력 3 21]<기해>

맑다가 또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날 거북함에 쓸 돛베 스무아홉

필을 받았다. 정오에 활을 쏘는데,  조이립(조이립)과 변존서(변존서)가 자웅을 다투다가 조

이립이 이기지 못했다. 우후가 방답에서  돌아와 방답첨사가 방비에 온  정성을 다하더라고

매우 칭찬했다. 동헌 뜰에 돌기둥 화대를 세웠다.

 

2월 초9 [양력 3 22]<경자>

맑다. 새벽에 쇠사슬을 꿸 긴 나무를 베는 일로 이원룡 (이원룡)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두산도(돌산도)로 보냈다.

 

2월 초10 [양력 3 23]<신축>

안개비, 개었다가 흐렸다가 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김인문(김인문)  순찰사영에서

돌아왔다. 순찰사의 편지를 보니, 통역관들이 뇌물을 많이 받고 중원(명나라)에 무고하여 군

사를 청하기까지 했을 뿐아니라 중원에서 우리 나라와 일본 사이에 무슨 딴 뜻이 있는가 의

심하게까지 했으니, 그 흉칙함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통역관들이 이미 잡혔다고는  하지

, 해괴하고 분통함을 참을 수 없다.

 

2 11 [양력 3 24]<임인>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배 위에서 새로 뽑은 군사들을 점검했다.

 

2 12 [양력 3 25]<계묘>

맑고 바람도 자다. 식사를 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서 해운대 (여수시 동북쪽에 있

는 작은 섬)로 자리를 옮겨 활을 쏘았다.  침렵치(침렵치)라는 운자(운자)를 띄워 봤더니 너

무 조용했다. 나중에 군관들도 모두 일어나 춤을 추고  조이립(조이립)이 시를 읊었다. 저녁

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2 13 [양력 3 26]<갑진>

맑다. 전라우수사(이억기)의 군관이 왔기로 화살대 큰 것 ·중치 백 개와 쇠 쉰근을 보냈다.

 

2 14 [양력 3 27]<을사>

맑다. 아산 어머니께 문안차 나장(고을이나 병마사·수사의 영문에 있는 사령) 두 명을 내어

보냈다.

 

2 15 [양력 3 28]<병오>

비바람이 매우 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새로 쌓은 해자 구덩이가 많이 무너져  석수

(석수)들에게 벌을 주고 다시 쌓게 했다.

 

2 16 [양력 3 29]<정미>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여섯 순을 쏘았다. 신구번의 군사를 점검했다.

 

2 17 [양력 3 30]<무신>

맑다. 나라제삿날(세종의 제사)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2 18 [양력 3 31]<기유>

흐렸다.

 

2 19 [양력 4 1]<경술>

맑다. 순찰하러 떠나 백야곶(여천군 화양면 백야도)의 감독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

권준(권준)이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 기생도 왔다. 비가  온 뒤라 산의 꽃이 활짝

피어 경치가 멋져 형언키 어렵다. 저물어서야 이목구미(여천군 화양면 이목리)에 이르러 배

를 타고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에 이르니 영주(고흥)현감(배흥립)과 여도 권관(황옥천)

이 마중했다. 방비를 검열하는데 흥양현감은 내일 제사가 있다고 먼저 갔다.

 

2 20 [양력 4 2]<신해>

맑다. 아침에 모든 방비와 전선을 점검해 보니, 모두 새로 만들었고 무기도 웬간히 완비되었

. 늦게야 떠나서 영주(고흥)에 이르니 좌우의 산의 꽃과 들가의 봄풀이 한폭의 그림 같다.

옛날에 영주가 있다더니 역시 이와 같은 경치였던가 !

 

2 21 [양력 4 3]<임자>

맑다. 공무를 본 뒤에 주인(감영과 고을의 연락을 취하는 영저리)이 자리를 베풀어 활을 쏘

았다. 조방장 정걸(정걸)도 와서 보고 능성현  감 황숙도(황숙도)도 와서 함께 술취했다.

수립(배수립)도 나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신홍헌(신홍헌)

으로 하여금 술을 걸러 지난날에 심부름하던  삼반하인(군노·사령·급창 등)들에게 나누어

먹이도록 했다.

 

2 22 [양력 4 4]<계축>

아침에 공무를 본 뒤에 녹도로 갔다. 황숙도(황숙도)도 같이 갔다. 먼저 흥양 전선소에 이르

러 배와 집기류을 몸소 점검했다. 그 길로 녹도로 가서 곧장 봉우리 위에 새로 쌓은 문다락

으로 올라가 보니, 경치의 아름다움이 이 근방에서는 으뜸이다. 만호의 애쓴 흔적이  손닿지

않은 곳이 없다. 흥양현감(배흥립)과 능성현감 황숙도(황숙도)   만호와 함께 취하도록 마

시고 겸하여 대포 쏘는 것도 봤다. 촛불을 밝혀 이슥해서야 헤어졌다.

 

2 23 [양력 4 5]<갑인>

흐렸다. 늦게야 배를 타고 발포로 가는데, 맞바람(역풍)이 세게 불어 배가 갈 수가 없다. 

신히 성머리에까지 이르러 배에서 내려  말을 탔다. 비가 몹시 쏟아져  일행 모두가 꽃비에

흠뻑 젖은 채로 발포로 들어가니, 해는 벌써 저물었다.

 

2 24 [양력 4 6]<을묘>

가랑비가 온 산에 내려 지척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나 마북산(고흥군

포두면 마복산) 아래의 사량에 이르러 배를 타고 노질을 재촉하여 사도(고흥군 점암면 금사

)에 이르니, 흥양현감이 먼저 와 있다. 전선을 점검하고 나니, 날이 저물므로 그대로 눌러

잤다.

 

2 25 [양력 4 7]<병진>

흐렸다. 여러 가지 전쟁 방비에 탈난 곳이 많다. 군관과 색리들에게 벌을 줬다. 첨사를 잡아

들이고 교수(고을 수령 아랫 벼슬아치)를 내어 보냈다. 이곳의 방비가 다섯 포구 가운데 최

하인데도 순찰사가 포상하라고 장계를 올렸기 때문에 죄상을 조사조차 하지 못했으니  우습

.맞바람이 세게 불어 출항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잤다.

 

2 26 [양력 4 8]<정사>

아침 일찍 출항하여 개이도(여천군 화정면 개도)에 이르니, 여도진의 배와 방답진의 마중하

는 배가 나와서 기다렸다.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를 마치고서 무기를 점검

했다. 장전과 편전은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어 고민이다. 전선은 좀 온전한 편이니 기쁘다.

 

2 27 [양력 4 9]<무오>

흐렸다. 아침에 점검을 마친 뒤에 북쪽 봉우리에 올라가 지형을 살펴보니, 깎아지른 외딴 섬

인지라 사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과 해자 또한 매우 엉성하니 무척 근심이 된

. 첨사가 애쓰기는 했으나, 미쳐 시설을 못했으니 어찌하랴. 저녁나절에야 배를 타고 경도

(여수시 경호동 대경호도)  이르니, 여필(여필)  조이립(조이립)이 군관·우후들이 술을

싣고 마중나왔다. 이들과 함께 마시고 즐기다  해가 넘어간 뒤에야 관청으로 돌아왔다.  2

28 [양력 4 10]<기미>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을

쏘았다.

 

2 29 [양력 4 11]<경신>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중위장을

순천부사로 고쳐 임명했다고 하니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