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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佛說佛母出生三法藏般若波羅蜜多經)제13권

행성 2009. 4. 13. 10:16
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佛母出生三法藏般若波羅蜜多經)제13권


시호(施護) 한역 이미령 번역



12. 현시세간품 ②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또다시 여래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인하기 때문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과 여러 다른 견해를 지닌 보특가라(補特伽羅)의 온갖 행동과 출몰을 여실하게 환히 아신다. 어떤 것이 여래께서 모든 중생과 여러 다른 견해를 가진 보특가라의 온갖 행동과 출몰을 아시는 것인가?
수보리여, 이른바 중생이 일으킨 모든 행동의 출몰은 색에 의지해서 생하고, 수・상・행・식에 의지해서 생한다고 환히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색・수・상・행・식에 의지해서 생하는 것인가? 이른바 여러 다른 견해를 지닌 보특가라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킨다.
‘나와 세간은 항상하고 색은 항상하다. 나와 세간은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또한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다. 이와 같이 나와 세간은 항상하고 수・상・행・식은 항상하다. 나와 세간은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또한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다. 수・상・행・식은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또한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다.
또한 다시 나와 세간은 유변(有邊)이고 색도 유변이다. 나와 세간은무변(無邊)이다. 유변이기도 하고 또한 무변이기도 하다. 유변도 아니고 무변도 아니다. 색은 무변이다. 유변이기도 하고 무변이기도 하다. 유변도 아니고 무변도 아니다. 이와 같이 나와 세간은 유변이고 수・상・행・식도 유변이다. 나와 세간은 무변이다. 유변이기도 하고 또한 무변이기도 하다. 유변도 아니고 무변도 아니다. 수・상・행・식은 무변이다. 유변이기도 하고 또한 무변이기도 하다. 유변도 아니고 무변도 아니다.
또한 죽은 뒤의 색은 여거(如去)이고 여거가 아니다. 여거이기도 하고 또한 여거가 아니기도 하다. 여거도 아니고 여거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수・상・행・식은 죽은 뒤에 여거이고 여거가 아니다. 여거이기도 하고 또한 여거가 아니기도 하다. 여거도 아니고 여거 아닌 것도 아니다.
또다시 몸은 곧 신(神)이다. 몸은 신과 다르다. 이와 같이 색・수・상・행・식은 바로 몸이고 곧 신이다. 색・수・상・행・식은 몸이나 신과 다르다.’
이러한 견해는 모두가 5온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이러한 것이 모두 보특가라의 다르고 어리석은 견해로서 여래께서는 하나하나를 여실하게 환히 아신다.
수보리여, 이런 뜻으로 인하여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인하기 때문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과 여러 다른 견해를 지닌 보특가라의 이와 같은 출몰을 능히 아시는 것이다.
또다시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인하기 때문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색・수・상・행・식의 모습을 여실하게 환히 아신다.
어떤 것이 여래께서 중생의 색의 모습을 아시는 것인가? 수보리여, 이른바 색(色)의 여여(如如)를 환히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여래가 중생의 수・상・행・식의 모습을 아는 것인가? 수보리여, 이른바 수・상・행・식의 여여를 환히 아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런 뜻으로 인하여 여래가 설한 중생 출몰(出沒)의 여(如)는 곧 5온의 여(如)이고, 5온의 여(如)는 곧 세간의 여(如)인 것이다. 왜냐하면 5온과 세간의 여(如)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온의 여는 세간의 여와 같고 세간의 여는 일체법의 여와 같다. 일체법의 여는 수다원과의 여와 같고, 수다원과의 여는 사다함과의 여와 같고, 사다함과의 여는 아나함과의 여와 같고, 아나함과의 여는 아라한과의 여와 같고, 아라한과의 여는 연각과의 여와 같고, 연각과의 여는 여래의 여와 같다. 그러므로 여래는 저 성문・연각의 과와 5온・세간, 나아가 일체법과 동일한 여(如)이다.
이와 같은 모든 여여(如如)는 하나의 성품도 아니고 많은 성품도 아니다. 갖가지 성품에 즉하면서도 갖가지 성품을 떠났다. 둘이 아니고 분별도 아니고 지음도 아니면서 다함도 없다.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반야바라밀다에 인하기 때문에 이러한 여여를 얻으신 것이다. 이 여(如)를 증득하였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설하여 능히 세간을 보일 수 있다.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로서 모든 부처님을 낳았다. 이렇게 낳음으로 말미암아 곧 저 일체법이 여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하게 환히 안다. 이러한 여를 증득하기 때문에 세간에 출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여(如如)의 법이란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여(如)를 인하기 때문에 보리과를 얻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이 깊고 깊은데 어떤 사람이 능히 믿고 이해하겠습니까? 어찌 불퇴전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이나 서원이 가득 찬 아라한이나 바른 견해를 지닌 보특가라가 능히 믿고 이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다시 수보리여, 여여의 법이란 바로 다함 없는 모습으로 가장 훌륭하고 깊고 깊다.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저 다함 없는 상[無盡相]을 여실하게 널리 설하신다.”
그러자 제석천주와 욕계의 나머지 천자 무리와 색계의 2만 범중(梵衆) 천자가 부처님 계신 곳에 왔다. 도착한 뒤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물러나 한 곳에 머물렀다.
이 때 여러 천자들이 각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은데 여기에서 어떻게 상을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천자들이여, 모든 법은 공(空)을 상으로 삼고,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상으로 삼는다. 이 상은 생하지 않고 멸하지 않으며, 물들지 않고 깨끗하지 않다. 법계가 고요한 것은 마치 허공과도 같아 의지할 바가 없으니 상에 즉해도 상이 없다.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색・수・상・행・식 또한 이와 같은 상으로 상에 즉해도 상이 없다고 설하신다. 그렇지만 이 모든 상은 상을 능히 부술 수 없으며 세간과 천인과 아수라들이 능히 부술 수 없는 바이다. 왜냐하면 저 천인과 아수라들은 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천자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허공에 대고 누가 지었느냐고 묻는다면 이 사람은 올바르게 물은 것인가?”
여러 천자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허공은 지은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누군가 능히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둘이 아닌 법으로부터 생겨나서 모든 법의 상 또한 둘이 아닌 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이 상을 얻었기 때문이니 즉 머무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에 짓는 상이 없다고 설하시는 것이다.”
이 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상은 깊고 깊습니다. 여래께서는 이 상을 얻었기 때문에 등정각을 이루셨습니다. 걸림없는 지혜로써 반야바라밀다를 설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다는 바로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곳입니다.”
부처님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인하기 때문에 저 세간의 상을 여실하게 나타낸다. 수보리여,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법에 의지하고 법을 공양 공경하고 존중 찬탄하나니, 법이라는 것은 곧 반야바라밀다이다. 부처가 있든 부처가 없든 이 법은 언제나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며, 의지함으로 인하여 여래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 익히는 것이며, 수행하고 익힘으로써 일체지를 얻는 것이다.
또다시 수보리여, 그대는 이제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은혜를 알고 능히 은혜를 갚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설령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묻기를 ‘누가 은혜를 알고 능히 은혜를 갚는 사람인가?’ 하면 마땅히 답하기를 ‘부처님이야말로 바로 은혜를 알고 능히 은혜를 갚는 사람이다’라고 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행해야 할 도(道)와 배워야 할 법을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누가 도와 이 법을 호념하겠는가?
수보리여, 여래께서 행하고 배우는 것이 바로 이 반야바라밀다이니, 이런 뜻으로 인하여 여래의 이름을 ‘진정으로 은혜를 갚는 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다시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모든 법에 지음이 없음을 아나니 짓는 모습이 없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지금 다시 참답게 모든 법에 지음도 없고 짓는다는 모습도 없으니, 또한 이것이 여래께서 진정으로 은혜를 갚는 분인 것이다.
또다시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모든 법이 전부 반야바라밀다로부터 왔음을 알고 지금 다시 반야바라밀다가 세간을 나타내 보인다고 여실하게 설하시니, 또한 이것이 여래께서 진정으로 은혜를 갚는 분인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모든 법을 아는 이도 없고 보는 이도 없는데 어떻게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 반야바라밀다가 세간을 나타내 보인다고 설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그대는 능히 나에게 이 깊고 깊은 뜻을 묻는구나. 수보리여, 그렇다. 모든 법을 아는 이도 없고 모든 법을 보는 이도 없는데, 무엇이 모든 법을 아는 이도 없고 모든 법을 보는 이도 없다고 하는가? 이른바 모든 법이 텅 비고 모든 법이 의지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모든 법을 아는 이도 없고 보는 이도 없지만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바로 이 법을 얻기 때문에 곧 반야바라밀다가 능히 세간을 나타낸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엇이 세간을 나타내는 것인가? 수보리여, 만일 색을 보지 않고 수・상・행・식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세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이름하여 색을 보지 않고 수・상・행・식을 보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일 색을 연(緣)하지 않고 식이 생기면 이것을 이름하여 색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수・상・행・식을 연하지 않고 식이 생기면 이것을 이름하여 수・상・행・식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수보리여, 만일 색・수・상・행・식을 보지 않으면 곧 세간을 보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세간을 보지 않으면 이름하여 세간을 진실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세간을 진실로 보는 것인가? 이른바 세간은 텅 비었기 때문이며, 세간은 모습을 떠났기 때문이며, 세간은 고요하기 때문이며, 세간은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다는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며 여래・응공・정등정각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13. 부사의품(不思議品)

이 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으뜸이고 깊고 깊으며 큰일을 위하여 출현하였고 가히 생각지 못한 일, 가히 일컬을 수 없는 일,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일, 가히 셈할 수 없는 일,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 평등한 일을 위하여 출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으뜸이고 깊고 깊으며 큰일을 위하여 출현하였고 가히 생각하지 못하는 일, 가히 일컬을 수 없는 일,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일, 가히 셈할 수 없는 일,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 평등한 일을 위하여 출현하였다.
수보리여, 무엇이 가히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위하여 출현하였다고 하는가? 이른바 여래법(如來法)・불법(佛法)・자연지법(自然智法)・일체지법(一切智法)의 이와 같은 법들은 가히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다. 굴릴 만큼 마음이나 마음에 속하는 법이 아니므로 이 가운데서는 분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반야바라밀다는 가히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위하여 출현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무엇이 가히 일컬을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인가? 이른바 여래법・불법・자연지법・일체지법의 이와 같은 법들은 마음으로 일컫는 바가 아니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일컬을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이다.
수보리여, 무엇이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인가? 이른바 여래법・불법・자연지법・일체지법의 이와 같은 법들은 모든 양을 넘어서 있고 한량이 없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이다.
수보리여, 무엇이 가히 셈할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인가? 이른바 여래법・불법・자연지법・일체지법의 이와 같은 법들은 모든 셈을 넘어서 있고 셈이 미치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셈할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이다.
수보리여, 무엇이 가히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한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인가? 이른바 여래법・불법・자연지법・일체지법의 이와 같은 법들은 동등한 것이 있지 않으니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한 일을 위하여 출현한 것이다.”
또다시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법・불법・자연지법・일체지법의 이와 같은 여러 법들이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다면, 저 색 또한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고, 저 수・상・행・식 또한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합니까?”
부처님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수보리여, 색은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고, 수・상・행・식은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다. 나아가 모든 법 또한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다.
왜냐하면 색은 법의 성품에서 마음의 법이 아니고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기 때문이고, 수・상・행・식은 법의 성품에서 마음의 법이 아니고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든 법도 법의 성품에서 마음의 법이 아니고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색・수・상・행・식은 법의 성품에서 마음의 법이 아니고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기 때문에 가히 생각할 수 없고 일컬을 수 없으며, 나아가 모든 법 또한 가히 생각할 수도 없고 일컬을 수도 없다.
수보리여, 색・수・상・행・식은 가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나아가 일체법 또한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색・수・상・행・식의 양은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모든 법의 양은 또한 얻을 수 없다.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곧 색・수・상・행・식과 나아가 모든 법은 짓는 바가 없다. 짓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색・수・상・행・식과 나아가 모든 법은 생겨나는 바가 없다. 생겨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색・수・상・행・식과 나아가 모든 법은 모두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수보리여, 색・수・상・행・식은 가히 셈할 수 없기 때문에 나아가 모든 법 또한 가히 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셈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색・수・상・행・식은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기 때문에 나아가 모든 법 또한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다. 왜냐하면 허공이 평등한 것과 같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그러하다.
또다시 수보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허공에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있는가?”
수보리가 아뢰었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저 모든 법 또한 다시 그러하다. 허공은 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가히 생각할 수 없다. 허공은 가히 일컬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가히 일컬을 수 없다. 허공은 가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가히 헤아릴 수 없다. 허공은 가히 셈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가히 셈할 수 없다. 허공은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법 또한 가히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온갖 분별을 떠났으며 만일 분별한다면 이 모든 것은 식업(識業)이다.
수보리여, 온갖 수를 헤아리는 것이 멸한 것을 ‘가히 생각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일컬을 바가 없기 때문에 ‘가히 일컬을 수 없다’고 이름한다. 헤아림이 없기 때문에 ‘가히 헤아릴 수 없다’고 이름한다. 온갖 셈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가히 셈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허공과 같기 때문에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하다’고 이름한다.
이런 인연으로 인하여 마땅히 알아라. 여래법・불법・자연지법・일체지법과 나아가 모든 법은 전부 허공과 같아서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일컬을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고 가히 셈할 수 없으며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 평등한 것이다.”
이러한 가히 생각할 수 없고, 나아가 동등함이 없을 정도로 원만평등한 법문을 설할 때에 모임 중에 있던 5백 명의 비구와 20명의 비구니가 모든 법을 취하여 받지 않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잘 해탈하게 되었으며, 60명의 우바새와 30명의 우바이가 티끌을 멀리 떠나서 법의 눈이 깨끗해지게 되어 즉시 부처님 앞에서 모두 기별을 받았다. 20명의 보살은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고 여러 보살들이 이 현겁(賢劫)에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습니다.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큰일을 위하여 출현한다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다는 큰일을 위해서 출현한다는 것을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불법(佛法)・연각법(緣覺法)・성문법(聲聞法)은 모두 반야바라밀다에 머문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세간의 찰제리 왕자가 관정을 받은 뒤에는 왕위에 오른다. 모든 왕의 일과 나라와 성의 일과 백성의 일 등은 모두 대신에게 맡기고 신하는 명령을 받은 뒤에 전체적으로 거두어서 행한다.
반야바라밀다 또한 이와 같다. 모든 불법과 연각법과 성문법은 모두 반야바라밀다에 머문다. 그렇지만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법을 전체적으로 거두니 이와 같은 법을 이름하여 큰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큰일을 위하여 출현하는 것이다.
또다시 수보리여, 반야바라밀다는 색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한다. 수・상・행・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한다.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와 아나함과와 아라한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한다. 연각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한다. 일체지(一切智)를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반야바라밀다가 일체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대가 증득한 아라한법은 보는 바가 있는가? 받아들이는 바가 있으며 집착하는 바가 있는가?”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증득한 법은 그 속에서 보는 것도 없고 가히 받아들일 것도 없으며 가히 집착할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다 또한 그러하다. 모든 여래법과 나아가 일체지법의 이 모든 법 속에서 볼 만한 것도 없고 받아들일 만한 것도 없고 집착할 만한 것도 없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일체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출현하는 것이다.”
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다는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으며 참으로 드물어서 얻기가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대승에 처음 머무는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런 말을 듣고서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고 믿고 이해한다면, 이 보살은 바른 인[正因]을 갖추었으며 과거 세상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미 착한 뿌리를 심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서도 또한 다시 놀라거나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고 깨끗하게 믿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바로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이 때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다 바른 법은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으며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바른 법을 듣고 믿고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과거 세상의 부처님 처소에서 이미 착한 뿌리를 심은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설령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신행지(信行地)에 머무른 뒤에 이 모든 중생이 한 겁을 채우거나 한 겁을 줄이거나 이치대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 동안 능히 이 반야바라밀다의 바른 법을 이치대로 사유하고 인법(忍法)에 안주하는 사람만은 못하리니, 이 사람의 공덕은 앞의 사람보다 갑절이나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반야바라밀다의 바른 법은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다. 설령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신행지(信行地)에 머무른 뒤에 이 모든 중생이 한 겁을 채우거나 한 겁을 줄이거나 이치대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 동안 능히 이 반야바라밀다의 바른 법을 이치대로 사유하고 인법(忍法)에 안주하는 사람만은 못하리니, 이 사람의 공덕은 앞의 사람보다 갑절이나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바른 법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이치대로 수행하여야 한다.”
이 때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이 각각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큰 바라밀다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며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어서 드문 일이며 얻기가 어렵습니다. 저희들은 각각 기쁜 마음으로 받들겠습니다.”
저 모든 천자들이 이와 같이 찬탄하고 난 뒤 각자 머리를 세존의 발에 대고 절을 한 뒤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부처님의 모임에서 떠나갔다. 여기에서 사라져 이내 몸을 숨기더니 나타나지 않고, 각각 저희들의 하늘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