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는 이미 오래 전에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궁궐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 ‘삼한산림비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산(漢山)은 금국(金局)이라서 궁궐을 반드시 동향으로 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가 쇠약해진다. 터를 고르는 자는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말라.
동쪽은 허하고, 남쪽은 낮으니 북악산 아래에 터를 잡지 마라. 검은 옷을 입은 도적(왜적)이 동쪽에서 쳐들어올까 두렵다. (한양 땅에) 도읍을 정하려는 자가 스님 말을 들으면 나라의 운수가 좀 연장된다. 그러나 만약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시비를 걸면 5대도 못가서 왕위를 뺏는 변고가 생기리라. 또 200년 후에는 대환란이 닥치니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삼가 조심하라.〉
예언서의 스님은 무학대사이고 정씨는 삼봉 정도전이다.
과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도읍터를 물색할 것을 명했다.
이성계가 희망하는 계룡산을 둘러 본 무학대사가 북한산을 찾아왔다. 이씨 왕조의 새로운 도읍터를 잡기 위해서였다.
무학대사는 왕십리 일대를 헤매다가 이곳의 노인들로부터 옛날에 도선국사가 ‘왕십리’라는 글자를 석비에 새겨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선국사의 선견지명에 새삼 탄복하며 10리를 거슬러 가니 과연 인왕산과 북악산 아래에 왕이 머물 도읍터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양에 새 도읍을 세우기로 결정했는데 어디에 궁궐을 세울 것인지 신하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무학대사는 인왕산 아래에 궁궐을 지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주장한 반면,
정도전은 자고로 제왕들은 남쪽을 보면서 정사를 폈다면서 북악산 아래를 고집했다. 결국 정권의 막강한 실세인 정도전의 고집대로 북악산 아래에 궁궐이 지어졌고, 그 후 우리나라의 국운은 결정이 되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삼한산림비기’가 우려했던 그대로 진행되었다. 5대도 못 내려가 왕위를 찬탈한 단종애사의 비극이 벌어졌고, 198년 만에 임진왜란의 대환란이 빚어졌다.
지금의 서울은 많은 변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앞의 흉물스럽던 일제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었고,
경복궁의 명당수인 청계천이 복원되었으며, 일제의 잔재인 시청 청사도 곧 헐릴 계획이라고 한다.
민족 정기가 되살아나는 조짐도 있지만 행정수도를 충청의 연기군에 빼앗기는 비운도 맞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국운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공과는 먼 훗날의 사가들이 평가하리라고 본다.
결론 : 정도전이 나라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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