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합니다(南無佛).
법에 귀의합니다.
비구승에게 귀의합니다.
모든 보살에게 귀의합니다.
마하살에게 귀의합니다.
문수사리보살에게 귀의합니다.
보살도는 매우 어렵다.
나는 몸과 목숨으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되 애석(愛惜)해 하는 것이 없다.
보살은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한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숙명(宿命)이 이르러 와서 원가(怨家)나 채주(債主)가 이르더라도
보살은 환희하며 필경에 죄도 또한 두려워(怖懅)하지 않는다.
보살은 법을 지니기를 법답게 하고, 계를 지니기를 계답게 한다.
보살은 믿음으로써 하기 때문에 부처가 됨을 얻는다.
보살은 널리 온갖 경전을 읽고 모두 모든 도에 들어가서 중생을 순화(順化)한다.
보살은 항상 자비한 마음으로 행하고 말씨가 부더러워
사람들의 뜻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보살은 처자와 함께 사는 것을 원가(怨家)에 살면서
항상 그 뜻을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한다.
보살은 여인을 보기를 호랑사자(虎狼獅子)와 같이 하고
독사와 같이 하면서도 보살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욕은 보살의 뜻을 움직일 수가 없다.
보살은 욕망을 버렸기 때문에 애욕이 더럽힐 수 없다.
보살의 청정한 행은 연꽃이 높은 산 육지에 자랄 수 없는 것과 같다.
보살은 애욕 중에 사는 것이 연꽃과 같다.
진흙 속에 살지만 진흙이 묻어 더렵혀지지 않는다.
보살은 안을 경계하고 밖을 경계하지 않는다.
외행(外行)은 땅과 같고 내계(內戒)는 물과 같다.
물은 정정유연하는 것으로써 행(行)을 삼고,
땅은 많이 포용하고 많이 수용하는 것으로써 공덕을 삼는다.
모든 백초수목(百草樹木)이 모두 땅으로부터 생장함을 얻고,
일체 만물이 모두 물로써 생활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보살의 공덕은 땅과 같고 물과 같다.
보살은 산에 홀로 살더라도 두려움이 없다.
보살은 집에 머물러 처자를 거느리더라도
항상 홀로 있는 듯이 편안하고 안정되어
다시 통양(痛痒) 사상(思想)의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의 공덕은 존대(尊大)한 것이 외외(巍巍)하고 당당하여
끝이 없고 바닥이 없고 가장자리가 없고 한정이 없다.
공덕은 다 일컫기도 어렵고 헤아리기도 어렵다.
이것을 보살의 십시(十時)의 계로 삼는다.
보살은 항상 네 가지 등심(等心)을 행하되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
이미 공덕을 믿어서 곧 일주(一住)를 얻는다.
이미 일주를 얻어서 곧 이주(二住)를 얻는다.
이미 이주를 얻으면 곧 삼주를 얻는다.
이미 삼주(三住)를 얻으면 곧 사주를 얻는다.
이미 사주를 얻으면 곧 오주를 얻는다.
이미 오주를 얻으면 곧 육주를 얻는다.
이미 육주를 얻으면 곧 칠주를 얻는다.
이미 칠주를 얻으면 곧 팔주를 얻는다.
이미 팔주를 얻으면 곧 구주를 얻는다.
이미 구주를 얻으면 곧 십주를 얻는다.
이미 십주를 얻으면 곧 부처가 됨을 얻어 곧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이 보살이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득도하기에 이르는 것이라 한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나를 따라 이 경을 풍송하는 이는
이미 모든 악을 물리치고 부처를 얻음이 빠르게 된다.
보는 이, 듣는 이, 한 때에 환희하는 이는 이미 자기에게 있는
무앙수(無央數)의 죄를 물리치고 십주의 신심을 얻어서 도를 얻기에 이른다.
항상 매월 15일마다 하루 낯 하룻밤 동안 이 경을 읽고 외워야 하리라.
이 복이 삼계(三界)를 덮으리라.
한정 짓거나 막거나 얽히거나 집착하는 행을 짓지 말라.
이것은 곧 공덕을 멀리 떠나는 것이어서 보살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룹명 > 부처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第12時)] (0) | 2009.03.09 |
---|---|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第11時)] (0) | 2009.03.08 |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第9時)] (0) | 2009.03.06 |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第8時)] (0) | 2009.03.05 |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第7時)] (0) | 200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