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施護) 한역 이미령 번역
22. 선지식품 ②
이 때 세존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만일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은 색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수・상・행・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널리 모든 세간과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그들의 조복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어지럽혀지거나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성문이나 연각의 행과 섞이지 않으며, 성문이나 연각의 지위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행하는 바가 없으면서 행하고, 머무는 바가 없으면서 머무는 것이며, 능히 부처의 성품에 들어가며 여래의 성품과 자연지의 성품과 일체지의 성품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행한다면 가장 으뜸가고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으며 반야바라밀다의 뛰어난 행과 상응한다.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밤낮으로 이와 같이 부지런히 행한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가갈 수 있으며, 나아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다.
또 수보리여, 가령 염부제 안의 모든 중생 하나하나가 사람의 몸을 얻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며, 이 마음을 낸 뒤에 수명이 다하도록 모든 부처님을 존중하고 공경하여 공양하고 또다시 널리 일체에게 두루 보시를 행하며 곧 이와 같은 보시의 공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하자.
수보리여, 이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인연으로 얻게 되는 복덕이 비록 많을지라도 보살마하살이 능히 하루 동안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바른 생각을 일으켜서 그 보살이 일으킨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바른 생각을 따르는 까닭에 능히 모든 중생에게 커다란 복전이 되어주는 것만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이 일으키는 평등한 자애심은 다른 모든 중생에게는 보살마하살과 같은 마음이 없으니 오직 여래께서 자심(慈心)을 갖추신 것만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여래・응공・정등정각께서는 이미 부사의법을 원만히 이루셨으며, 그러고도 언제나 자・비・희・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무엇이 보살은 능히 중생에게 커다란 복전이 되는 것인가? 수보리여, 이른바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인하기 때문에 바른 지혜를 갖춘다. 이 지혜를 이미 갖추었으므로 모든 중생이 뇌옥(牢獄)에 갇혀서 계박되어 있음을 보는 것이다.
보살이 이 때 대비심의 보호와 도움을 받기 때문에 곧 다시 깨끗한 하늘의 눈[天眼]으로 두루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가없는 중생들을 관찰하나니, 모든 중생이 무간업(無間業)을 짓고서 장차 괴로운 과보를 받고 온갖 견해의 그물에 떨어지며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임을 본다.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난 뒤에 깊이 대자심과 대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이 대자대비의 광명으로써 두루 널리 비춘다. 그러면서 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장차 모든 중생의 커다란 의지처가 되리라. 널리 모든 중생의 온갖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 주리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또한 다른 상에도 머물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큰 지혜광명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곧 능히 중생을 위해 커다란 복전이 되어주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않으며 모든 세간의 신심어린 베풂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른바 음식과 옷과 와구와 의약품이다. 보살이 비록 베풂을 받을지라도 한마음으로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익히기 때문에 저 베푸는 자와 받는 자와 베풀어지는 물건 모두가 청정해지며 일체지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그 나라의 믿음이 깃든 베풂을 헛되지 않게 받고자 한다면, 그리고 만일 중생을 행하여야 할 바른 길로 이끌어 보이고자 한다면, 그리고 만일 중생을 삼계의 계박에서 풀어내어 구제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만일 중생을 윤회의 괴로움에서 건져내고자 한다면, 그리고 만일 중생을 깨끗한 지혜의 눈[慧眼]을 열어 보이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바른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만일 이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곧 반야바라밀다의 말과 상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의 모든 말은 전부 반야바라밀다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생각하는 바가 또한 말을 따른다면 곧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밤이나 낮 동안에 이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바른 생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일찍이 없었던 커다란 마니보배를 얻었다고 하자. 이 보배를 얻은 뒤에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지만 훗날 다른 때에 어떤 인연이 있어 이 보배를 잃어버렸다고 한다면 수보리여, 저 사람은 이 인연으로써 마음에 근심과 번민이 생길 것이며, 슬픔과 괴로움과 후회와 미련으로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어찌하여 이 커다란 보배를 잃어버렸단 말인가?’
이와 같은 생각이 끊임없을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 또한 이와 같다. 커다란 법의 보배란 이른바 반야바라밀다이다.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다의 커다란 법의 보배를 얻고서 언제나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바른 생각을 일으키며, 언제나 일체지의 마음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의 자성이 공하고 떠남이며, 모든 생각 또한 공하고 떠남이라면 왜 부처님께서는 보살마하살이 언제나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생각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자성이 공하고 떠남이기 때문에 모든 생각 또한 공하고 떠남이라는 것을 안다면 곧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바른 생각이며, 곧 이것이 일체지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의 공 속에는 불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의 공 속에 불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면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능히 반야바라밀다를 불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여기에 불어남과 줄어듦이 있다면 곧 반야바라밀다의 공 또한 불어남과 줄어듦이 있을 것이다. 만일 보살마하살의 공 속에 불어남과 줄어듦이 없다면 곧 반야바라밀다의 공 속에도 또한 불어남과 줄어듦이 없을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설하는 것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고 이름하게 된다.”
“반야바라밀다의 모습[相]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다의 공한 모습[空相]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다의 공한 모습을 떠나서 가히 행할 만한 반야바라밀다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공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공함을 떠나서 가히 행할 만한 반야바라밀다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공이 공을 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색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수・상・행・식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색을 떠나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는 법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수・상・행・식을 떠나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는 법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수보리가 여쭈었다.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너는 어떤 법이 있어서 가히 반야바라밀다 행하는 것을 보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너는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보살마하살이 행해야 할 바라고 보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일 법이 얻을 바가 없다면 곧 법은 가히 볼 수가 없다. 여기에 생할 수 있는 생이 있으며 멸할 수 있는 멸이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모습을 안다면 곧 무생법인을 얻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인(忍)을 얻는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얻을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여래의 두려움이 없는 행이라고 이름한다.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이 행한다면 곧 부처의 위없는 지혜와 광대한 지혜와 가장 으뜸가게 예리한 지혜와 일체지지를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처소가 따로 없는 행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생법(無生法)으로써 가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여.”
수보리가 여쭈었다.
“마땅히 어떠한 법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받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너는 어떤 법이 있어서 가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너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어서 이것이 기별을 받는 바라고 보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저는 기별 받는 법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다시 기별을 주는 법이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뜻 때문에 저는 모든 법이 증득함도 없고 여기에서 증득하는 자도 없으며, 모든 법은 얻음도 없고 여기에서 얻을 바도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23. 제석천주찬탄품(帝釋天主讚歎品)
그러자 제석천주가 큰 모임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으며, 보기 어렵고 듣기 어렵습니다. 또한 다시 이것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천주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여, 바로 그렇다.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으뜸가고 깊고 깊으며, 보기 어렵고 듣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 교시가여, 허공은 깊고 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깊고 깊다. 허공은 공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공하다. 허공은 떠남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떠남이다. 허공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보기 어렵다. 허공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제석천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얻어 듣고 받아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널리 설하며 나아가 베껴 쓴다면 이 사람에 대해 가장 으뜸가는 선근을 구족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교시가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얻어 듣고 받아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널리 설하며 나아가 베껴 쓴다면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이미 능히 가장 으뜸가는 선근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교시가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가령 염부제의 모든 중생이 전부 사람의 몸을 얻고, 하나하나의 중생이 열 가지 착함을 갖추어 닦으면 저 모든 선남자・선여인들은 이 인연으로 얻을 복이 많겠는가?”
제석천주가 말하였다.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여, 저 선남자・선여인이 얻을 복이 비록 많다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듣고 받아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고 나아가 베껴 쓰는 것만은 못할 것이니,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 구지 나유타분이나 산분(算分)・수분(數分) 그리고 비유분(譬喩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며, 나아가 오파니살담분(烏波尼殺曇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때 모임 중에 있던 한 비구가 이 말을 듣고 나서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만일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잠깐 동안이라도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듣고서 능히 한 생각으로 깨끗한 믿음을 일으킨다면 이선남자・선여인은 그대보다도 더 뛰어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 제석천주가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한번 마음을 내는 순간에 깨끗한 믿음을 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보다 뛰어날 것인데, 하물며 널리 듣고 지니며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연설하고 나아가 베껴 쓰는 자이겠습니까? 또한 하물며 듣고 지닌 대로 설하여진 바와 같이 배우고 설해진 대로 행하며 수행하고 익히고 상응함이겠습니까?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보살행을 닦는 것은 모든 세간이나 하늘이나 인간이나 아수라들보다 뛰어납니다. 비구는 비단 모든 세간이나 하늘이나 아수라들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다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및 저 연각보다 뛰어납니다. 비단 수다원 나아가 연각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 선교방편이 없으면서 보시를 행하는 다른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비단 저 보살의 이와 같은 보시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 선교방편이 없으면서 깨끗한 계를 지닌 다른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비단 이와 같이 계를 지닌 저 보살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서 선교방편이 없으면서 인욕을 수행하는 자보다 뛰어납니다. 비단 이와 같이 인욕을 수행하는 보살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서 선교방편이 없으면서 정진을 일으키는 다른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비단 저 이와 같이 정진을 일으키는 보살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다시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떠나서 선교방편이 없으면서 선정을 닦는 다른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듣고서 능히 설해진 대로 배우고 설해진 대로 행하면서 선교방편을 구족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모든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와 나아가 성문이나 연각 및 다른 보살보다 뛰어납니다.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잘 행하는 자이며,능히 일체지에 가까이 가는 자이며, 모든 부처님을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은 선근이 무르익어 장차 도량에 앉을 것입니다. 이 보살은 능히 중생의 온갖 번뇌와 괴로움을 끊었습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것은 보살법을 배우는 것이지 성문・연각의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울 때 마땅히 호세(護世) 사대천왕이 보살의 처소에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마땅히 이 반야바라밀다를 부지런히 익히고 빨리 배워야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증득하여야 합니다. 그대가 장차 도량에 앉을 때에 우리들 네 왕은 각각 보배로 만든 발우를 가지고 와서 그대에게 바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단 호세의 네 왕만이 보살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역시 저 보살의 처소에 언제나 가서 보호하고 도움을 줄 것인데, 하물며 다른 천자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보살은 능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며 배운 뒤에 능히 행함이 참으로 희유하기 때문입니다. 세간의 중생은 온갖 고뇌가 있으나 이 보살은 이미 모든 괴로움을 멀리 떠났습니다. 어디에서나 커다란 이익과 즐거움을 이룹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는 현세의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 때 존자 아난이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제석천주는 이와 같이 참으로 명쾌하게 말을 하는데 스스로의 말솜씨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의 위신력이 호념하는 바일까?’
그러자 제석천주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그 생각을 알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시여,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세존의 위신력으로 세우는 바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 세존께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다. 제석천주가 말한 바와 같이 이 즐거이 설하는 것은 모두가 바로 부처님의 위신력의 호념을 입은 바임을 알아야 한다.”
24. 증상만품(增上慢品)
이 때 세존께서 다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아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모든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악마들은 모두 이렇게 의심을 일으킨다.
‘보살마하살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데 마땅히 중도에서 성문・연각의 과보를 취하여 증득할 것인가, 아니면 결정코 곧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를 것인가?’
아난이여, 저 모든 악마들은 어떤 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여 결정적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는 것을 볼 때, 모든 악마들은 곧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나니 마치 심장에 화살을 맞은 것과 같이 괴로워한다.
또다시 아난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모든 악마들은 보살의 처소에 와서 어지러운 마음을 일으킨다. 저 악마의 힘으로써 온갖 우레와 비바람 등의 현상이 변화하여 나타나 주변의 처소에서 보살로 하여금 두렵고 겁나고 산란하게 하고 나아가 보살로 하여금 한 생각 중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 잃어버리게 한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악마는 결코 모든 보살을 능히 어지럽히지는 못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 악마에게 어지럽혀짐을 당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만일 보살이 과거 세상에서 일찍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듣기는 하였으나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면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이 바로 악마의 어지럽힘을 당하며, 악마의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을 들었을 때 의심을 일으키기를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은 있는 것인가, 이 반야바라밀다 법문은 없는 것인가?’라고 한다면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이 바로 악마의 어지럽힘을 당하며, 악마의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악지식을 가까이 하면 악지식을 가까이 하였기 때문에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도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또한 그 뜻을 청하여 묻지 못하면서 다만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금 어떻게 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수 있겠는가?’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이 바로 악마의 어지럽힘을 당하며, 악마의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저 삿된 법을 받고 삿된 법의 행을 따른다면 저 모든 악마들이 이 일을 알고 나서 기쁜 마음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나를 돕고 또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나를 돕게 한다. 그리고 또한 나로 하여금 원하던 바를 이루게 하며 나의 뜻을 따르게 한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이 바로 악마의 어지럽힘을 당하며, 악마의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 법문을 듣고 난 뒤에 다른 보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반야바라밀다는 깊고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오히려 그 근원의 뜻을 얻지 못하였거늘 그대들이 지금 무엇으로써 수행하고 익히겠는가? 그저 다른 경에서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지니며 수행하고 익힌다면 반드시 장차 거기에서 법의 맛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보살이 이렇게 말함으로써 다른 보살들이 반야바라밀다의 마음에서 멀리 떠나려고 한다면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이 바로 악마의 어지럽힘을 당하며, 악마의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바로 참다운 멀리 떠남의 행을 닦는 자이고 다른 보살들은 멀리 떠남의 행이 아니다.’
그러면 곧 악마가 이 생각을 알고서 크게 기뻐하며 뜻이 흡족해진다. 왜냐하면 저 보살은 이런 생각을 일으키는 대로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물러나 잃음으로써 악마의 마음에 기쁨이 생겨난다.
또한 아난이여, 모든 악마들이 보살의 처소에 와서 보살의 이름과 가문을 찬탄하며 두타 공덕과 나아가 갖가지 공덕의 모습들을 찬탄하면 보살이 이런 찬탄을 듣고 나서 집착하게 되며, 증상만과 온갖 거만한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다른 보살은 업신여긴다. 이 때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늘어나면 이 보살은 저 악마의 힘을 더하게 된다.
그의 모든 언설을 사람들이 모두 믿고 받아들이며, 믿고 받아들인 뒤에는 설해진 대로 배우고 설해진 대로 행하는데, 듣거나 보아서 이와 같이 배우거나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모두가 진실하지 않으며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뒤바뀐 마음을 일으킨다. 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입과 마음의 업이 모두 깨끗하지 못하게 된다. 이 인연으로써 능히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갈래가 더욱 늘어나게 되며, 저 악마의 무리들은 여기에서 이익을 보는 까닭에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그 뜻이 흡족해지면서 곧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나의 궁전은 참으로 텅 비지 않게 되었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보살은 공덕의 모습을 갖출 수 없으며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지도 않고 불퇴전에 머무는 자도 아니다. 왜냐하면 증상만(增上慢)의 마음이 온갖 허물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보살이 바로 악마의 어지럽힘을 당하며, 악마의 부림을 당하는 자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보살승(菩薩乘)의 사람이 성문승(聲聞乘)의 사람과 서로 말다툼을 하며 상호간에 욕이 나오고 업신여기며 서로를 비방하고 가책한다면, 이 때 악마가 이 일을 알고 나서 이렇게 생각한다.
‘저 보살승의 사람은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비록 일체지로부터 멀리 떨어지지만 그 멀리 떨어지는 바는 크거나 오래지 않다.’
만일 보살승의 사람이 보살승의 사람과 함께 말다툼을 벌이면서 상호간에 욕하고 업신여기며 서로를 비방한다면, 이 때 악마는 이 일을 알고 난 뒤에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그 뜻이 흡족해져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보살승의 사람은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래도록 저 일체지에서 멀리 떠나게 될 것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만일 아직 기별을 받지 못한 보살이 이미 기별을 받은 다른 보살에 대하여 성내거나 원한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마음을 일으키는 대로 퇴전하고 잃어버리게 된다. 한 생각을 일으키면 한 겁을 물러나며, 끝내 생각하는 양만큼 겁수도 따를 것이다. 만약 일체지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혹 선지식을 만나게 될 때 다시 정진의 갑옷을 입고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런 죄를 일으킨다면 부처님께서는 참회를 허락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나의 법 속에 죄에서 벗어나는 법이 있다고 말하나니, 모든 성 문승과 연각승과 보살승 중에서 나는 각각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는 법이 있다고 말한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만일 보살승의 사람이 보살승의 사람과 싸움을 벌이면서 서로 욕하고 업신여기며 비방하고 난 뒤에 서로 후회하거나 버리지 않으면서 다시 성냄과 원한을 품고서 그 마음을 얽어맨다면, 나는 그에게는 죄에서 벗어나는 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난이여, 만약 보살승의 사람이 보살승의 사람과 말다툼을 벌이고 나아가 비방하고 난 뒤에 곧 서로 후회하고 버린다면, 나는 마땅히 그를 위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법을 설할 것이다. 아난이여, 또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모든 중생에게 마땅히 자비스런 인욕[慈忍]을 행할 것이다. 설령 그들이 악한 마음을 일으켜서 나를 모욕하더라도 나는 오히려 한 생각도 성냄을 품지 않겠거늘 어찌 다시 보복을 하겠는가? 내가 혹시 잠시라도 성냄과 원한의 마음을 품는다면 깊이 커다란 과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을 위하여 커다란 다리를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두루 건너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저 모든 중생에게 착한 뜻을 품어야 한다. 설령 욕을 듣더라도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나와 남에게 모두 평등해야 한다. 자신의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덧씌워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내가 지은 것인 양 여기며 언제나 후회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중생이 두루 커다란 안락함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분노와 번민을 많이 품고 있다면 원하건대 나는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그들을 제도하리라 생각하고, 내가 어느 곳에서나 그들이 보리를 구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이 때 기뻐하며 바라볼 것이고 만면에 흡족한 모습을 띨 것이다. 또한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짓지 않을 것이고, 마음이 견고하여 모든 성냄이나 번민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난이여, 만일 보살승의 사람이 능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낸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것은 보살행을 닦는 사람이다.
또다시 아난이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성문의 사람에 대해서 업신여기거나 거만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나아가 모든 중생에게도 또한 다시 업신여기거나 거만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보살과 더불어 함께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보살은 마치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면서 서로 바라보며 함께 머물러야 한다.
‘이 사람은 바로 나의 큰 스승으로서 하나의 수레에 함께 탔고 한 길을 함께 간다. 만약 저 보살마하살이 배운 것이 있다면 나도 따라서 배우리라. 평등하게 보살승 중에 안주하여 보살법과 같이 이치대로 배우고 닦을 것이다. 그가 만일 삿된 것을 배웠다면 내가 배울 바가 아니다. 그가 만약 깨끗한 것을 배워서 능히 일체지와 더불어 이치에 맞게 상응한다면 나도 또한 이와 같이 배울 것이다.’
아난이여,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것이 바로 함께 배워 마땅히 함께 머물러야 할 바이다. 이와 같이 배운다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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