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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12월 26일 임시 이사회에서 공직자 종교편향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자고 뜻을 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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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사회지도층의 종교 편향적 언행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한국불교 각 종단 수장들이 최근 유력 대선 후보를 포함한 공직자들의 잇따른 종교 편향적 언행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대선을 앞두고 교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관음종 등 27개 종단 총무원장을 비롯해 주요 소임자들로 구성된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지관, 이하 종단협)는 제6차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 서찬교 성북구청장 등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회지도층의 종교 편향적 언행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결의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종단협 이사들은 “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의 종교 편향적 언행은 남북이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또 다른 사회갈등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대국민 화합 차원에서 이를 엄단해야 한다”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회의에 참석한 모 스님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최근 종교편향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종단협 차원에서 이 전 시장의 종교 편향적 언행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긴 논의 끝에 종단협 이사들은 특정인을 거명하지 않은 선에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사회지도층들의 종교 편향적 언행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성명을 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비록 원론적인 성명에 그쳤지만 교계 주요 종단 대표자들이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문제 삼아 성명을 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향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우 불교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향후 대선 행보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재직 당시 한 개신교 선교 행사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교계에 강력한 저항을 받았던 전력이 있는데다 지난해 6월 ‘사찰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라’는 비상식적인 부산 지역 개신교 청년들의 선교행사에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전달해 파문을 일으킨바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봉헌서에 ‘서울시장 이명박’이라는 문구를 사용했음에도 이 전 시장은 공식적인 참회 없이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일부”라거나 “어떤 행사인지 모르고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불교계의 반감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 시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며 대선 후보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불교계가 등을 돌린다면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전 시장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 있는 영남 지역이 아이러니하게도 불교 교세가 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각종 선거에서 종교편향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는 선거에서 낙마했다는 속설이 교계 안팎에 팽배해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 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선거 직전까지 당선이 확실시 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낙마한 데는 두 아들의 병역비리와 함께 유세과정에서 나온 불교 폄하 사건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교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유권자에게 배포된 홍보물에 ‘거짓말, 속임수, 경선불복’ 등을 열거하고 그 상징으로 민속탈을 게재하면서 ‘파계승 탈’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마치 불교와 불교성직자들이 위선과 속임수의 대명사인 것처럼 대비시켜 불교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서둘러 일간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이 후보는 결국 낙마했다.
또 지난 2004년 포항시를 기독교화 하겠다는 이른바 ‘성시화 운동’을 펼쳤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불교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한나라당 후보 공천에서 탈락, 지난해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이 같은 사례로 볼 때 이 전 시장의 그 동안 종교 편향적 언행이 대선 유세활동 시작과 함께 쟁점화 된다면 지지율 변화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전 시장이 그 동안의 종교 편향적 언행에 대해 공식 참회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불교계의 큰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종교 편향적 언행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각 종단 대표들의 이번 결의는 그 동안 종교편향 인사에 대해 가졌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향후 대선을 비롯해 각종 선거에서 종교 편향적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가려 다시는 공직에 나갈 수 없도록 하겠다는 모종의 경고로 분석된다.
종단협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이사 스님은 “서로 다른 이념과 성향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사회지도층 인사가 특정종교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며 “이번 이사회에서도 종교편향 인사가 더 이상 공직에 나설 수 없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성명서 채택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